그것도 사랑이지.

    동창회가 열리는 곳은 구 모립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어떤 가게였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 어른이 되면 꼭 리뷰를 하겠다고 다짐했던 가게지만.. 거의 19년만이지.

    고등학생이 되면서 연락이 끊기는 친구들도 있었고,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나도 연락을 하지 못했으니까 

    과연 이걸 가도 되는지 고민했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제 초몰입에 대해서 큰 생각이 없는데 말이야.

    연차를 어떻게 내느냐도 문제였지만, 새 미팅은 동창회가 열리는 주의 다음 주로 잡혀 있으니까 그건 빼고. 

     

    그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많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직도 초몰입을 사랑하는 친구들도 반가웠지만..

    반가운 것도 모자라, 제일 신경쓰이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미워하는 감정이 묻힐 만큼 애정을 주겠다던 내 친구, 윤태민.

    내가 연차를 내든 말든 관심도 없는 상사가 전화할 때쯤.. 동창회비를 엔빵하자던 누군가 말이다.

    밴드 위시리스트의 멋진 보컬, 잘생긴 애, 자주 통화하는 사이, 날 귀엽다고 말하는 애.

    그래도 말이지.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고 우는 너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을까?

     

    현아.... 있잖아. 나 동창회에 가도 울고싶지 않아.

    민이 네가 계속 웃을 수 있을까? 난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첫 날은 늦게 도착했지만, 울고 있는 너를 달래준 다음에 내 이름을 속여가며 친구들을 놀리는 데 바빴던 건 기억난다. 

    바로 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내가 너무 성급했나 싶었지.

     

    그리고 제 기억이 맞다면 문제는 다음 날부터다.

    지금도 하나하나 다 말하라면 말할 수 있을 정도니까.

     

    민이랑 같이 천생연분 게임을 하고 (물론 제일 친하니까 내심 바라고 있긴 했지만), 처음 보는 네 얼굴도 볼 수 있었고 (신기했지만), 민이 앞에서 결국 울었고 (좀 부끄러웠지만), 20년간 짝사랑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순정남이네~), 그 사람은 꽃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고.. 연예인인데 이래도 괜찮은 거냐고 물어봤지만 팬들은 이해해 줄 거라 해서. 그냥 그런 줄 알고 말았던 기억이 선명한.. 이상한 나날로 기억에 남아서. 그저 그랬으니까 너와 새로운 추억이 생겼다고 생각했었어.

     

    근데 그거 하나만 말해도 돼? 음음.. 네가 나를 보고 짜식은 표정을 지었을 때 있잖아.

    사실은 무슨 표정인지 아직 모르지만.. 내가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을 때 말이야...

    네가 하는 말이 아니라면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네가 짝사랑하는 사람도 같이 착각했을 거야. 

    윤태민은 지이현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나에게 애정을 준다던 네가 아니라면.. 

    나는 그랬어. 너에게 말하진 못 하겠고, 속으로 생각할래.


     

    근데 이건 무슨 상황이지?

     

    "현아, 할 말이 있는데"

     

    이현은 태민을 쳐다봤다.

     

    "내가 그, 그으... 게 말이야."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거 같아."


    "같은 게 아니라... 확실히 좋아하고 있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전하다가도, 금방 침착해지는 걸 보니 넌 아나운서를 해도 되겠다.

    지금 너만 떨고 있는 건 아니야.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을까? 네가 언젠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고백을 받았을 때는 어떤 말을 해야하는 거지..

    쓸데 없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고 있어."

     

    이현은 우선 주변을 둘러보고, 

    상황파악을 하는 데에 온 신경을 쏟는다.

    지금은 수원에 있는 내 자취방 앞이고, 

    네가 쓸쓸하면 같이 있어준대서 자고 가라 그랬지.

    요즘은 쉽게 자기 힘들다고 그랬으니까 널 도와주고 싶었거든.

     

    내 손을 잡으려다가, 다시 망설이는 네 손을 꼭 잡는다.

     

    "네가 나에게 애정을 준다고 말했던 건 항상 기억하지."

     

    네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안아주는 걸 좋아하는 것도 기억해.

    짝사랑을 그런 게임에서 밝히고 싶지 않았다는 것도,

    걔가 한 말 하나하나를 다시 풀어내어 그것에 기대를 한다는 것도.. 별 걸 다 기억하네.

     

    "그럼 너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했어?"

     

    네가 호수 같은 눈이라고 하던 그 눈은 지금 너와 마주치는 데 쓴다. 광고주에게 완전히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이 왔을 때처럼.. 

     

    그렇지만 제 눈 앞에 있는 건 저를 당찬엠제트로 착각하는 광고주가 아니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나를 잘 알아주는 윤태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네가 진심이라는 것도 모를 수 없다.

     

    "내가 너에게 사랑을 아는 너와 만나서 다행이라고 했을 때에도?"

     

    그때부터 좋아했구나.

     

    "네 첫 공연에 가서, 내가 널 응원해 줬을 때도 말이야.

    너는 날 좋아했어?"

     

    아무렴 좋아했겠지.

     

    이현은 답변을 하지 않는 태민에게 다가가서,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전한다.

    그러곤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이야기한다.

    네가 그동안 내게 해준 말들이 전부 떠올라서 벅차오르지만... 네 마음보다 벅찬 마음일까?

     

    "이렇게 용기 내서 말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아.

    긴 세월 동안,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나를 생각해온 세월에는 못 미치겠지만,

    나도 이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을까?"

     

    오랜 친구 관계가 깨지는 게 두려워서일지도 모르지만..

    태민은 더 이상 말을 꺼낼 생각이 없었고,

    이현은 말을 얹을 수 없었다.

     

    태민에게 항상 믿음을 주던 이현은 

    원래 계획처럼 그를 제 집에 들여보냈을 뿐이다.

     

    동창회가 끝난 지도 며칠이 지나,

    슬슬 일상으로 돌아갈 무렵에......

     

    「 민아, 요즘은 시간 돼?
    나도 널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거든.
    20년이나 늦게 말해서 미안해.
    이제 너에게 내 사랑을 전해주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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